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지면이 뒤틀렸다. 시우의 발치에서 시작된 충력파가 주변을 삼켜버렸다. 부서진 건물 잔해가 허공으로 치솟았고, 자욱한 먼지 구름이 전장을 뒤덮었다.
그 중심에 시우가 서 있었다.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채였다.
[심언(深言) - 영역 전개]
시우의 손목에 감긴 [낡은 가죽 장갑]이 기분 나쁜 진동을 내뿜었다. 그것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었다. 세상의 인과를 거스르고 존재 자체를 압박하는 위압이었다.
‘오고 있나.’
먼지 구름 너머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히 마수의 것이 아니다. ‘지성’을 가진 존재의 의지였다.
콰르르릉!
그때, 먼지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섰다.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수. 놈의 신체는 검은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로 시우가 방출한 푸른 마력이 대조를 이루며 넘실거렸다.
“크아아아악!”
괴수가 포효했다. 소리가 공기를 찢으며 지면을 갈아엎었다. 물리적인 파동을 넘어 듣는 자의 정신을 흔드는 강렬한 '위협'이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고막이 터지고 머릿속이 타버린 듯, 그들은 몸을 웅크린 채 발광했다.
“제기랄, 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무슨 수준의 마력이지? 내뿜는 것만으로 성벽이 무너졌어!”
그들은 보았다. 재앙이라 불리는 괴물과 맞서며,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요지부동인 시우의 뒷모습을.
시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아니, 그것은 답변보다 선언에 가까웠다.
“한 걸음도 더는 안 된다.”
그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심연의 언어]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움직이지 마라(不動).”]
말이 닿는 순간, 괴물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분명 달려들려 했으나, 시우가 펼쳐놓은 ‘심연’의 영역에 막혀 공간 자체가 고착된 듯 굳어버린 것이다.
“커헉……!”
괴물이 억눌린 비명을 토해냈다. 육체적 타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우의 권능이 직접 놈의 근원(Core)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시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심연의 위압으로 빈틈이 생긴 곳에 마력을 응축해 던졌다.
“사라져.”
단어가 내뱉어짐과 동시에 시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였다.
치익!
공기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의 손바닥이 괴수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폭발적인 마력이 전이되었다.
콰아앙!
폭발은 정밀했다. 주변을 파손하지 않고 오직 괴물의 신체만을 직격하는 날카로운 위력. 몸체의 일부가 날아가고 검은 비늘들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하지만 괴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놈의 눈이 붉게 번뜩이며 요동쳤다.
‘이거…… 내 영역을 읽었나?’
시우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자는 단순한 개체가 아니다. 시우가 방출하는 ‘심연’의 정보적 파동을 받아내며 적응하고 있었다.
“후후…… 재미있군.”
괴물의 머리 위로 검은 안개가 휘몰아쳤다. 놈의 육신이 일렁이며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명체가 아닌,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체였다.
그때였다.
두둥-!
대지가 진동하며 새로운 파동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시우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성벽 너머 먼 길을 돌아온 다른 존재가 난입한 것이다.
“어떤 자가 감히 이곳의 질서를 어지럽히는가.”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먼지 구름 사이로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한 명은 날카로운 창을, 또 한 명은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선 사내는 중성적인 외모였으나 눈매만큼은 매서운 살기를 품고 있었다.
“신수의 인장을 쓰는 자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심연을 건드리는 자는 처음이군.”
사내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황금빛 줄기가 뿜어져 나와 공중의 마력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시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들은 누구냐.’
놈들이 풍기는 위압감은 아까와 종류부터 달랐다. 교단이나 제국의 고위 기사인가? 아니다, 훨씬 더 정제된 힘이다.
시우는 내면의 [심언]을 활성화했다.
[분석 시작.]
시야에 황금색 데이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호자가 아니었다. 침입자를 추격하거나 예언의 전조를 막으러 온 ‘추격자’였다.
“귀찮은 일이 생겼군.”
시우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전투는 이제 시작도 하기 전에 세 갈래로 찢겨나가고 있었다. 괴물과의 사투, 그리고 난입한 의문의 추격자들.
그때 시우의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며 [심언] 시스템 메시지가 붉게 점멸했다.
[주의: 고순도 마력 반응 감지. ‘권능’ 침범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우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 역시 똑같은 시선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가 얼어붙었다. 두 진영 사이에서 충돌하는 마력이 불꽃을 일으켰고 주변 바위들이 비명을 지르듯 부서져 나갔다. 당황한 구호 기사들이 절규하듯 외쳤다.
“공간이 붕괴되고 있어!”
시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상관없다.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발밑의 쓰레기일 뿐이니까.
“먼저 묻는 건 네가 아니었나.”
시우의 손바닥이 땅을 찍었다.
[심언] 영역이 강제로 확장되며 황금과 푸른색 마력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그 순간, 하늘 위로 천둥소리가 몰아치며 자욱한 안개가 전장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재앙급 괴물도, 정체불명의 추격자들도 모두 한 점—시우를 향해 동시에 움직였다. 모든 인과가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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